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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명리학기초 겁살 재살 천살 시공간 |
우리가 흔히 흉살이라 부르는 겁살, 재살, 천살은 단순한 불운의 기운이 아니다.
시공명리학에서는 이 세 가지가
‘저승사자들의 시공’, 즉
해자축(亥子丑)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인오술(寅午戌) 삼합의 인간계와 전혀 다른 의식 구조 속에서 작용하는 이 힘은,
세상에 창조와 파괴를 동시에 일으키는 ‘변화의 문’이다.
인간계와 영혼계 — 인오술과 해자축의 두 세계
하지만 해자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영혼의 시공이다.
이 영역의 사람들은 현실의 논리를 거부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는 사고가 이들에게는 ‘거꾸로 된 진실’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오술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해자축 사람에게는 명확히 보인다.
이것이 바로 저승사자의 의식 구조다.시공명리학기초 시공명리학에 의한갑목 정화
거꾸로 보는 사고 — 해자축의 본성
해자축의 에너지는 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앞이라 생각하는 것을 뒤로 보고, 정상이라 부르는 것을 비정상으로 본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현실’이 뒤집혀 있으며, 그 반전의 시선이 바로 창조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이 창조성이 방향을 잘못 만나면, 파괴로도 변할 수 있다.
즉,
해자축은 창조와 파괴가 한 몸인 시공이다.
창조로 빛날 것인가, 파괴로 무너질 것인가
해자축의 사람들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 힘은 예술가나 발명가에게는 ‘혁신’으로, 사기나 범죄로 흐르면 ‘저승의
손길’로 나타난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사주 속 병화(丙火)의 존재다.
병화는 어둠 속을 비추는 불이자, 저승사자의 세계를 이겨내는 유일한
빛이다.
병화가 없다면 그 에너지는 어둠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갉아먹게 된다.
겁재천의 시간 — 메뚜기 한철의 운명
겁재천은 3년 단위의 폭발적 에너지로 나타난다.
이 시기는 마치 ‘메뚜기 한철’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시기다.
“남들이 9년 동안 쌓을 것을 나는 3년 안에 끝낸다.”
이런 사고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는 빠르지만 지속성은 약하다.
3년 동안의 한탕이 끝나면, 모든 것이 드러나거나 무너진다.
이것이 겁재천의 순환 구조이며, 인간계에서 보면 ‘극단의 파동’으로
보인다.
세상은 왜 흔들리는가 — 겁재천의 사회적 작용
해자축이 작용할 때 세상 전체가 큰 변화를 겪는다.
IMF, 리먼 브라더스, 코로나 등 대규모 경제 사건은 모두 이 시공과 맞닿아
있다.
이때 저승사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한탕’으로 이용한다.
부동산, 금융, 투기, 공포 조장 ,모든 것이 이들의 무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작전에 휘말려 고통을 겪는다.
이것이 해자축이 가진 ‘저승의 게임’ 구조다.
이자율의 법칙 — 해자축의 경제 공식
해자축의 시공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
이자율이다.
이자율이 오르면 집값은 반드시 떨어지고, 이자율이 내리면 집값은 반드시
오른다.
이 단순한 공식이 해자축의 경제 원리다.
표면적으로는 뉴스나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저승사자들이 짜놓은 거대한
흐름 위에 서 있다.
이 법칙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
병화 — 어둠 속의 빛
해자축은 빛이 사라진 공간이다.
이 어둠 속에서 병화는 유일하게 길을 밝히는 존재다.
병화가 있다면 혼돈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정화(丁火), 기토(己土), 경금(庚金)만 있는 구조라면 해자축의
블랙홀에서 쉽게 무너진다.
병화는 단순히 불의 기운이 아니라,
혼돈을 꿰뚫는 의식의 불빛이다.
정화의 결박 — 벗어나지 못하는 불빛
정화는 자수(子水)와 가장 크게 충돌한다.
그래서 해자축 속의 정화는 늘 억눌림과 결박을 느낀다.
벗어나고 싶지만 자·축의 합에 묶여 있으니 도망칠 수도, 그대로 머물 수도
없다.
겉으로는 효녀처럼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자유를 향한 간절한 불꽃이 끓고
있다.
이 모순이 정화의 인생을 만든다.
결론 — 저승사자의 시공은 변화의 문이다
겁살, 재살, 천살은 인간의 불운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정비하는
저승사자의 작용이다.
그 에너지는 파괴를 통해 새 창조로 이어지며, 병화가 있는 자는 그 어둠을
빛으로 전환한다.
결국 겁재천은 “너는 어둠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묻는 시공이다.
그 답을 깨달은 사람만이, 저승의 시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