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론 고지론, 사주에서 어떻게 다를까?

 

묘지와고지 묘고론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늘 애매하게 남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묘지(墓地)와 고지(庫地)예요.

많은 책이나 강의에서 “묘지는 무덤이고, 고지는 창고다” 정도로만 설명하다 보니, 실제 차이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공부한 사람도 네 가지 土(辰·戌·丑·未)를 그냥 다 묘고(墓庫)라고 뭉뚱그려 부르곤 하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지와 고지는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합니다.

묘지는 양기의 무덤, 고지는 음기의 창고라는 게 핵심이에요.

 묘지는 양기가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사라지는 자리입니다.

반대로 고지는 음기가 저장되어 반드시 다시 쓰이는 자리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운용 방식은 전혀 다르지요.

 

불(火)의 삼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寅월에 丙火가 생지로 동하고, 午월에 이르면 丙火가 丁火로 바뀌며, 태양빛이 지구에 복사열을 퍼뜨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戌월에 도달하면, 丙火의 분산 에너지는 더 이상 쓰이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대신 丁火의 열기는 戌土에 저장되지요.

즉, 丙火는 확장이 멈추어 **묘지**가 되고, 丁火는 저장되어 **고지**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열매가 맺습니다. 가을이 오면 열매는 더 이상 커지지 않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단맛과 영양이 저장되어 있지요.

丙火는 열매가 커지던 태양빛이고, 丁火는 열매 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입니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깁니다. “戌월에 丙火를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그런데 亥월에도 태양은 뜨잖아?”라는 의문이죠.

사주에서 말하는 건 태양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쓰임’입니다.

戌월에 丙火가 묘지가 된다는 말은 태양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확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이미 열매가 완성되어 창고에 저장된 상태라면, 그 시점부터는 부피를 늘릴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丁火는 戌 속에 저장되어 반드시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戌에서 亥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丁火의 열기는 여전히 필요하고, 戌土와 亥水의 지장간에서 丁火와 壬水가 만나 辛丁壬 조합을 만들죠. 이 과정은 결국 다시 甲木으로 이어집니다.

즉, 丁火는 단순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생명의 발화를 위해 준비된 상태로 저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지라고 부릅니다.

 정리하면, 묘지는 양기의 무덤이라 더 이상 쓰임이 없는 자리이고, 고지는 음기의 창고라 반드시 다시 쓰임을 얻는 자리입니다.

丙火는 戌에서 확장을 멈추어 묘지가 되고, 丁火는 戌에서 저장되어 고지가 됩니다.

이 차이를 알게 되면, 단순히 “辰戌丑未는 다 묘고다”라는 뭉뚱그린 설명을 넘어, 자연의 순환이 어떻게 멈추고 또 이어지는지, 죽음과 활용의 경계가 어디서 갈리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金 기운을 예로 들어도 같은 원리가 보입니다. 申·酉에서 金의 확산이 마무리되면 戌에서 경금(庚金)의 외연 확장은 멈추어 묘지로 들어가고, 신금(辛金)의 정제된 본질은 戌에 저장되어 고지가 됩니다.

 이후 亥로 넘어가면서 辛金은 壬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시 水의 발현을 돕고, 다음 순환의 씨앗으로 이어집니다. 

즉, 확산하는 양(金의 외형)은 멈추고, 응축된 음(金의 정수)은 저장되어 다음 고리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火와 동일한 결을 이룹니다.